Life in Asan
삭제
인기 검색어
#다문화가족 #취업 #외국인등록 #외국인 #아산시
닫기

아산 소개

아산 소개

아산은 충남 북부에 위치한 산업과 관광이 조화된 도시입니다.
서해안고속도로, 경부고속도로, 장항선 등 교통망이 발달되어 있으며,
경부고속철도로 서부지역 접근성이 높아 관광과 지역개발 잠재력이 풍부한 곳입니다.

행정구역 소개

행정구역을 선택하시면 해당 지역의 지명유래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둔포면

둔포면(屯浦面)은 대한민국 충청남도 아산시에 있는 면이다.

지명유래

둔포면은 본래 아산군 삼북면(三北面)의 지역으로서 둔포(屯浦), 도곡, 석교, 시포, 신흥, 남창, 명포, 냉정, 신리, 법고, 신포, 상왕, 중왕, 하왕, 신선실, 방교, 석보, 팔용, 상념, 하념의 20개 리를 관할하였었다. 1914년 군면 병합에 따라 일북면(一北面)의 백양동(白楊面)과 전 천안군(天安郡) 모산면(毛山面)의 관대, 흑천, 가리, 장재, 합오, 죽대, 봉림, 산직, 합산, 송산, 부용, 시포, 신대, 당후, 어인, 문성, 항각, 신촌의 18개 리를 병합하여 해운이 성한 둔포의 이름을 따서 둔포면(屯浦面)이라 하여 아산군에 편입되었고 관대, 둔포, 봉재, 산전, 석곡, 송용, 시포, 신남, 신법, 신양, 신왕, 신항, 염작, 운교, 운용의 15개 리로 개편 관할하였다. 동쪽은 천안시, 남쪽은 음봉면, 서쪽은 영인면, 북쪽은 경기도 평택시에 닿는다.

연혁

  • 2008
    둔포리에서 우정에쉬르아파트 일대를 둔포7리로 분할
  • 2021
    신항리에서 두리봉, 문작골 일대를 신항2리로, 항각골 등 일대를 신항3리로 분할
닫기

영인면

영인면(靈仁面)은 대한민국 충청남도 아산시에 있는 면이다. 아산이란 지명의 뿌리가 되는 아산리가 중심인 면이다.

연혁

  • 삼한시대
    마한의 염로국이었으며, 백제시대에는 아술현(牙述縣)이었다.
  • 통일신라
    음봉현(陰峰縣)으로 개정
  • 고려시대 초
    인주(仁州)라 개정하였다가 1018년 현종 9년 아주(牙州)로 개정
  • 1413
    전국분할당시 아주(牙州)를 아산현(牙山縣)으로 개정함.
  • 1895
    아산현을 아산군(牙山郡)으로 개정
  • 1914
    3월 1일 조선 총독부령 제 11호에 의거 아산군 중 현내면, 일북면, 이북면의 33개리를 13개리로 병합하여 영인면으로 개정
  • 1914
    3월 1일 조선 총독부령 제11호에 의거 아산군, 신창군, 온양군 등 3개군이 통합된 통합군청이 영인면 아산리에 있다가 1922년 온양면 온천리로 이전하였다.
  • 1941
    동헌(현재 영인초등학교 자리)에서 현재의 면 청사로 옮김(구청사)
  • 1985
    구청사를 철거하고 신청사를 신축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음.
  • 2007
    월선리에서 도석골 일대를 월선3리로 분할[1]
  • 2010
    신봉리에서 작은철봉 일대를 신봉4리로 분할[2]
닫기

음봉면

음봉면(陰峰面)은 대한민국 충청남도 아산시에 있는 면이다.

지명유래

음봉면은 본래 아산군 일동면 지역으로서 16개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군면 폐합에 따라 이동면의 16개리와 천안군 환성면의 공수리를 병합하여 이 지방에 있는 아산의 옛 이름인 음봉의 이름을 따라 음봉면이라 칭했다

연혁

  • 2008
    덕지리에서 더 샾레이크사이드아파트 일대를 덕지3리로 분할
닫기

인주면

인주면(仁州面)은 대한민국 충청남도 아산시에 있는 면이다.

지명유래

인주면은 고려 성종 15년 인주군으로 명칭을 지었으며, 조선 세종 5년 평택현에서 아산현으로 개명하였다. 일제 강점기인 1914년 3월 1일 행정구역 통폐합시에 아산군 인주면이 되었으며, 1995년 1월 1일 통합으로 아산시 인주면으로 변경되었다.[1]
닫기

염치읍

지명유래

1911년 행정구역 변경시에 원남면 등 4개 마을을 병합, 아산군의 남쪽에 있다 하여 아남면이라 불리었다. 1914년 군, 면 폐합에 따라 아산군 삼서면의 8개 마을과 온양군 일북면의 일부, 서면의 실옥리 일부 지역을 병합하여 염치면으로 독립하였으며, 1990년 4월 1일 읍으로 승격하였다. 남쪽으로 곡교천(曲橋川)이 흘러 신창면(新昌面), 신정동(神井洞)과 경계를 이루고, 북쪽은 영인산(靈仁山)364m) 등 잔구에 의하여 영인면(靈仁面), 음봉면(陰峰面)과 경계를 이루며, 동쪽은 탕정면(湯井面), 서쪽은 인주면(仁州面)과 접한다. 따라서 지형은 북쪽의 산지와 곡교천 유역에 전개된 남쪽의 평야로 배산임수의 조건을 구비하여 주민의 대부분은 농업에 종사한다. 백암리에 현충사가 있어 연중 관광객이 끊이지 않는다. 교통은 온양∼현충사 간의 포장도로가 지난다. 문화재로는 이충무공 난중일기부서간첩 임진장초(李忠武公亂中日記附書簡帖壬辰狀草 국보76), 이충무공 유물(遺物:보물326), 아산 이충무공 유허(遺墟 사적 155), 세심사 다층탑(洗心寺多層塔 충남문화재자료 231), 홍가신선생 교지(洪可臣先生敎旨 충남문화재자료 310), 강청리(江淸里) 성지, 백암리(白岩里) 성지 등이 있다.

연혁

  • 1911
    원남면과 근남면을 합병하여 아산면으로 명칭변경
  • 1914
    삼서면 일부를 편입, 아산군 염치면으로 변경
  • 1985
    현 청사 개축 (12,30)
  • 1990
    읍으로 승격(4.1) / 송곡리로 아산군 청사이전
  • 1995
    아산시 염치읍으로 변경 (1.1, 시군통합으로 인함)
  • 2003
    석정2리 3,4반을 석정4리로 분할, 방현리에서 한남프레시앙아파트 일대를 방현4리로 분할, 송곡리에서 송곡신일아파트 일대를 송곡3리로 분할
  • 2007
    쌍죽리
닫기

탕정면

탕정면은 충청남도 아산시에 위치한 면이다. 면사무소는 명암리에 있다. 탕정면의 면적은 24.3km²이다. 북쪽으로는 음봉면, 서쪽으로는 염치읍, 온양3동, 남쪽으로는 배방읍, 동쪽으로는 천안시 불당동, 백석동과 접한다.

지명유래

1914년 온양군 북면과 원남면을 통폐합해 온양의 백제시대 이름인 '탕정'을 따 탕정면이 되었다. '탕정(湯井)'은 '끓는 우물', 즉 뜨거운 물인 온천이 나오는 곳이라 하여 붙은 이름이다.

연혁

  • 1914
    북면의 10개리와 원남면의 4개리를 병합해 탕정면이라 칭하였다.
  • 1973
    모종.권곡의 2개리가 온양읍으로 편입되었다.
  • 1983
    신리가 온양읍으로 편입되였다.
  • 1987
    구령리가 배방면에 편입되었다.
닫기

신창면

신창면(新昌面)은 대한민국 충청남도 아산시 서부에 있는 면이다. 북쪽으로는 곡교천을 두고 염치읍, 동쪽으로는 온양, 남쪽으로는 도고면과 송악면, 서쪽으로는 선장면과 접하고 있다. 낮은 산지로 이루어진 구릉지대와 평야지대로, 곡교천·삽교천 등의 하천이 흐르고 있다.

지명유래

자연마을로는 넙골, 칠목, 행촌 등이 있다. 넙골은 칠목 동쪽에 위치한 마을로 골이 넓은 마을이라 하여 넙골 또는 한자어로 광곡이라 불린다. 칠목은 행목리에서 가장 큰 마을로 옻나무가 많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행촌은 칠목 남동쪽에 위치한 마을이며 살구나무가 많이 있었다고 하여 붙여진 지명이다.

연혁

  • 백제
    굴직현(屈直縣)
  • 통일신라
    기량현(祈梁縣)
  • 고려 초기
    신창현(新昌縣)
  • 조선 태종 14년
    온창군(溫昌郡)
  • 조선 태종 16년
    신창현(新昌縣)
  • 1914
    아산군 학성면(鶴城面)
  • 1917
    아산군 신창면(鶴城面)
  • 2003
    남성리에서 신일임대아파트 일대를 남성6리로, 샘마을아파트 일대를 남성7리로, 상아아파트 일대를 남성8리로, 성우아파트 일대를 남성9리로 분할
  • 2007
    남성리에서 코아루아파트 일대를 남성10리로 분할
  • 2008
    남성리에서 다소미아파트 일대를 남성11리로 분할
  • 2009
    행목리에서 친오애아파트 일대를 행목4리로, 양우내안애아파트 일대를 행목5리로 분할, 남성리에서 소화마을아파트 일대를 남성12리 로, 코아루에듀파크아파트 일대를 남성13리로 분할
닫기

선장면

선장면은 삼대명당 중 선인앙장지지(仙人仰掌之地)라는 말에서 에서 유래하였다. 선장면은 백제시대에는 굴직현(屈直縣)이었고, 고려시대에는 신창면(新昌面)이었다. 일제시대인 1914년 3월 1일 행정 구역 개편에 따라, 초정면(椒井面)이 되었으며, 1917년 9월 25일 선장면(仙掌面) 으로 개칭되었다. 1979년 5월 현 청사를 신축하였다. 1995년 1월 1일 도농통합법에 의거 아산시 선장면이 되었다. 1996년 1월 1일에는 예산군 신암면 신종리중 하평리가 선장면 신덕2리로 편입되었다.[1]

지명유래

삼대명당중 선인앙장지지(仙人仰掌之地)에서 유래

연혁

  • 백제시대
    굴직현 (屈直縣)
  • 고려시대
    신창면 (新昌面)
  • 1914
    초정면 (椒井面)
  • 1917
    선장면(仙掌面) 개칭
  • 1979
    현 청사 신축
  • 1995
    도농통합법에 의거 아산시 선장면으로 개칭
  • 1996
    예산군 신암면 신종리중 하평리가 선장면 신덕2리로 편입
닫기

도고면

도고면은 아산군 서부에 위치하여 동쪽은 신창면과 송악면을 접하고, 남쪽은 예산군, 북쪽은 선장면과 접하고, 동부는 산간지이며, 서부는 평야지를 이루고 있다. 동서로 국도 제21호선 및 장항선 철도가 소재지를 관통하고 있다. 조선 후기 신창군 남상면 지역으로서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충청남도령 제 3호에 의거 이 지역에서 유명한 도고산(해발 483m)의 이름을 따 아산군 도고면으로 불렸다. 산세는 험하나 골이 깊어 토지가 비옥하여 농사가 잘되며 좌우 산세가 안정되어 주민의 인심이 좋고 도고산의 정기를 이어받아 면민이 잘살며 도고산의 정기를 후손에게 물려주기를 바라는 의미에서 남상면을 도고면으로 개칭하였다고 전해 내려온다.[1]

지명유래

조선 후기 신창군 남상면 지역으로서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충청남도령 제 3호에 의거 이 지역에서 유명한 도고산(해발 483m)의 이름을 따 아산군 도고면으로 불렸다.
닫기

송악면

송악면(松岳面)은 대한민국 충청남도 아산시에 있는 면이다. 아산시에서 면적이 가장 넓지만, 인구는 가장 적다. 동쪽으로는 천안시 동남구 광덕면, 서쪽으로는 도고면과 예산군 대술면, 남쪽으로는 공주시 유구읍, 북쪽으로 온양2동, 온양5동, 온양6동이 접해있다.

지명유래

1914년 군면 폐합에 따라, 남하면의 방산, 궁평, 마곡, 침곡, 오미, 역촌, 구산, 외암, 회화, 복구, 평촌, 월굴, 월라의 13개리와 신창군 남하면의 외덕아의 일부를 병합하여 송악산의 이름을 따라 송악면으로 하여 아산군에 편입되어 강당, 강장, 거산, 궁평, 동화, 마곡, 송학, 수곡, 역촌, 외암, 유곡, 종곡, 평촌 13개리로 개편 관할하였다.

연혁

  • 1914
    남상면과 남하면을 통합하여 송악면 신설
  • 2013
    유곡리에서 유곡3리 분할
닫기

배방읍

배방읍(排芳邑)은 충청남도 아산시에 있는 읍이다. 읍사무소는 공수리에 있다.배방읍은 크게 봉강천을 경계로 서쪽의 배방읍내와 동쪽의 신도시권(장재리·세교리·휴대리)으로 권역이 나뉜다. 1990년대부터 모산역이 위치한 읍내를 중심으로 많은 아파트가 지어졌고, 신도시권은 장재리에 위치한 천안아산역을 중심으로 아산신도시가 조성되면서 천안시의 도심과 연담화되어 인구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지명유래

배방이라는 지명은 온양 방씨와 관련이 있다. 당나라 한림학사인 방지의 6세손 방운이 고려 태조를 도와 고려 창업부터 성종 대까지 60여 년간 공을 세워 온수군에 봉해지고, 온양, 신창, 아산 3읍을 하사받으면서 방씨를 우러러본다는 뜻으로 배방이라 일컬었다. 중리에는 조선 초기 명재상인 맹사성 일가의 고택이 있는 아산 맹씨 행단이 있다.

연혁

  • 조선 시대
    온양군의 동상면(東上面), 동하면(東下面)을 합쳐서 배방면으로 이름 붙임.
  • 1914
    온양군, 아산군, 신창군이 아산군으로 통폐합되어 아산군 배방면이 되었다.
  • 1986
    남리(南里)가 온양시로 편입되어 온양시 남동이 되었다.
  • 1987
    탕정면 구령리(九靈里)를 편입하였다.
  • 1995
    온양시와 아산군이 도농복합시인 아산시로 통합되어 아산시 배방면이 되었다.
  • 2007
    공수리에서 중앙하이츠1차아파트 일대를 공수10리, 중앙하이츠2차아파트 일대를 공수11리, 한성필하우스아파트 일대를 공수12리, 한라비발디아파트 일대를 공수13리, 대우푸르지오아파트 일대를 공수14리로 분할[1]
  • 2007
    북수리에서 금호어울림아파트 일대를 북수8리로 분할[2]
  • 2008
    공수리에서 한성필하우스2차아파트 일대를 공수15리로 분할, 북수리에서 배방자이2차아파트 일대를 북수9리로, 롯데캐슬아파트 일대를 북수10리로, 중앙하이츠3차아파트 일대를 북수11리로 분할, 갈매리에서 배방자이1차아파트 일대를 갈매3리로 분할[3]
  • 2010
    배방읍의 인구가 인구 5만 명을 돌파하였다.
  • 2011
    장재리에서 용연마을 휴먼시아2단지아파트 일대를 장재2리로, 휴먼시아3단지아파트 일대를 장재3리로, STX KAN 4단지아파트 일대를 장재4리로, 5단지 부지 일대를 장재5리로, 연화마을 STX KAN 6단지아파트 일대를 장재6리로, 휴먼시아7단지아파트 일대를 장재7리로, 휴먼시아8단지아파트 일대를 장재8리로, 9단지 부지 일대를 장재9리로, 10단지 부지 일대를 장재10리로, 장재마을 휴먼시아11단지아파트 일대를 장재11리로 분할[5]
  • 2012
    공수리에서 아산배방삼정그린코아아파트 일대를 공수16리로, 아산배방2차푸르지오아파트 일대를 공수17리로 분할, 장재리에서 요진와이시티 일대를 장재12리로, 와이시티오피스텔 일대를 장재13리로, 펜타폴리스 일대를 장재14리로 분할 및 그 외 장재15~18리 분할[6]
닫기

온양1동

온양1동은 아산시민 생활권의 중심부에 위치하여 3차 산업을 주도할 뿐만 아니라 학교, 병원, 상가 등 각종 주민편익시설이 집중되어 있고, 예로부터 유명한 온천관광 자원이 풍부하여 외래의 관광객이 많이 찾아오는 등 교육, 문화, 경제 발전면에서 아산시의 중추적 역할을 다해왔다.

지명유래

전국 최고(最古)의 온천으로서의 역사를 자랑하는 온양온천(溫陽溫泉)은 백제, 통일신라시대를 거쳐 고려시대에는 온수현으로 지칭되었으며,1442년 세종대왕이 온양 행차시 온양군이라 개칭, 그 후 계속 온양(溫陽)으로 불리워져 왔다. 지명 자체가 이 곳이 온천지임을 말해주고 있으며, 조선시대 세종대왕이 15년(1433년) 정월에 안질 치료차 행차한 이후 현종, 숙종, 영조, 정조 등 여러 임금께서 온궁을 짓고 휴양이나 병의 치료차 머물고 돌아간 유적으로서, 정비와 영괴대(靈槐臺)의 비각과 비석은 현재 온양온천관광호텔 구내에 보존되어 있다.

연혁

  • 백제시대
    탕정군
  • 통일신라
    탕정주의 일부
  • 고려시대
    온주현으로 속함
  • 조선시대
    온양군으로 승격
  • 1914
    일제의 의해 온양군을 신창,아산과 통합하여 아산군으로 정하고 온양면이라 함
  • 1941
    온양면에서 읍으로 승격
  • 1986
    온양읍이 온양시로 승격되면서 온천동으로 불림
  • 1995
    온양시와 아산군이 아산시로 통합되어 온양온천1동이라 정함
  • 2003
    아산시 온양1동으로 개칭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음
닫기

온양2동

아산시의 중심지역으로 상가, 주택밀집지역으로, 대부분 서비스 3차 산업이 주종을 이루며, 문화복지 욕구가 다양한 지역임. 온양온천수의 근거인 문화재 자료로 지정된 어의정이 있어 지역주민의 자랑이 되고 있음

지명유래

전국 최고(最古)의 온천으로서의 역사를 자랑하는 온양온천(溫陽溫泉)은 백제, 통일신라시대를 거쳐 고려시대에는 온수현으로 지칭되었으며,1442년 세종대왕이 온양 행차시 온양군이라 개칭, 그 후 계속 온양(溫陽)으로 불리워져 왔다. 지명 자체가 이 곳이 온천지임을 말해주고 있으며, 조선시대 세종대왕이 15년(1433년) 정월에 안질 치료차 행차한 이후 현종, 숙종, 영조, 정조 등 여러 임금께서 온궁을 짓고 휴양이나 병의 치료차 머물고 돌아간 유적으로서, 정비와 영괴대(靈槐臺)의 비각과 비석은 현재 온양온천관광호텔 구내에 보존되어 있다.
  • 고려시대
    온수군
  • 조선시대
    온양군
  • 1914
    아산군 온천리
  • 1941
    아산군 온양면이 온양읍으로 승격
  • 1986
    아산군 온양읍이 온양시로 승격 분리
  • 1995
    아산군과 온양시를 통합, 아산시로 개편
  • 2003
    온천2동이 온양2동으로 명칭 변경
  • 2020
    행정구역 조정(온양5동에서 5개통 편입)
닫기

온양3동

온양3동은 시의 동북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도농복합형태로 최근 대형 아파트의 건립에 따라 인구가 증가하여 새로운 주거지역으로 변모하고 있다. 아산시음식물재활용센터를 비롯한 다수의 기업체가 있으며, 조상의 생활모습을 볼 수 있는 온양민속박물관을 포함한 13개의 주요기관이 위치해있다.

지명유래

전국 최고(最古)의 온천으로서의 역사를 자랑하는 온양온천(溫陽溫泉)은 백제, 통일신라시대를 거쳐 고려시대에는 온수현으로 지칭되었으며,1442년 세종대왕이 온양 행차시 온양군이라 개칭, 그 후 계속 온양(溫陽)으로 불리워져 왔다. 지명 자체가 이 곳이 온천지임을 말해주고 있으며, 조선시대 세종대왕이 15년(1433년) 정월에 안질 치료차 행차한 이후 현종, 숙종, 영조, 정조 등 여러 임금께서 온궁을 짓고 휴양이나 병의 치료차 머물고 돌아간 유적으로서, 정비와 영괴대(靈槐臺)의 비각과 비석은 현재 온양온천관광호텔 구내에 보존되어 있다.

연혁

  • 백제시대
    온수군
  • 통일 신라시대
    온정주
  • 고려시대
    온주현
  • 조선시대
    온양군
  • 1914
    아산군 온양면
  • 1941
    온양읍 승격
  • 1986
    온양시 권곡동
  • 1995
    아산군 온양시 통합, 아산시 권곡동
  • 2003
    온양3동으로 명칭변경
닫기

온양4동

온양4동은 북쪽으로는 곡교천, 동쪽으로는 온천동, 남산과 접하고 남서쪽으로는 농촌과 공단이 형성되어 있는 전형적인 도.농 복합지역이며 또한 방축실내수영장, 배미수영장, 시민체육관 등 시민을 위한 체육시설이 있고 아름다운 신정호와 이충무공 동상과 조각공원, 장영실과학관, 생태곤충원 등 관광인프라를 갖추고 있어 연간 수십만명의 관광객이 찾고 있으며 아산시민 전체의 휴식과 문화공간으로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는 곳이다. 희안마을 흑찰옥수수는 온양4동의 특화 먹거리이며, 신정호 주변에는 전망 좋은 카페거리가 조성되어 있어 관광 활성화에 기여하고 있다. 이처럼 온양4동은 앞으로도 농업,공업,관광산업은 물론, 문화와 주거의 중심지로 계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무한한 개발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지명유래

전국 최고(最古)의 온천으로서의 역사를 자랑하는 온양온천(溫陽溫泉)은 백제, 통일신라시대를 거쳐 고려시대에는 온수현으로 지칭되었으며,1442년 세종대왕이 온양 행차시 온양군이라 개칭, 그 후 계속 온양(溫陽)으로 불리워져 왔다. 지명 자체가 이 곳이 온천지임을 말해주고 있으며, 조선시대 세종대왕이 15년(1433년) 정월에 안질 치료차 행차한 이후 현종, 숙종, 영조, 정조 등 여러 임금께서 온궁을 짓고 휴양이나 병의 치료차 머물고 돌아간 유적으로서, 정비와 영괴대(靈槐臺)의 비각과 비석은 현재 온양온천관광호텔 구내에 보존되어 있다.

연혁

  • 고려시대
    온수군, 신창현
  • 조선시대
    온양군 이북면, 신창현 대동면
  • 1914
    아산군 온양면, 신창면(조선총독부 지방제도 개편)
  • 1983
    아산군 온양읍 편입(실옥, 득산, 점량)
  • 1986
    온양시 신정동(법률 제3798호)
  • 1995
    아산시 신정동(법률 제14774호)
  • 2001
    행정구역 분통(21통 → 23통)
  • 2003
    신정동에서 온양4동으로 명칭변경(온양행정구역 환원)
  • 2011
    온양 4동 행정복지센터소개 청사 이전 업무시작
닫기

온양5동

도.농 복합형 지역구조로 개발수요 증대 및 발전 잠재력 풍부, 사회간접시설 확충 및 신설교육기관 유치로 미래교육타운 부상, 공원녹지공간 확보로 쾌적하고 살기 좋은 주거지역으로 각광

지명유래

전국 최고(最古)의 온천으로서의 역사를 자랑하는 온양온천(溫陽溫泉)은 백제, 통일신라시대를 거쳐 고려시대에는 온수현으로 지칭되었으며,1442년 세종대왕이 온양 행차시 온양군이라 개칭, 그 후 계속 온양(溫陽)으로 불리워져 왔다. 지명 자체가 이 곳이 온천지임을 말해주고 있으며, 조선시대 세종대왕이 15년(1433년) 정월에 안질 치료차 행차한 이후 현종, 숙종, 영조, 정조 등 여러 임금께서 온궁을 짓고 휴양이나 병의 치료차 머물고 돌아간 유적으로서, 정비와 영괴대(靈槐臺)의 비각과 비석은 현재 온양온천관광호텔 구내에 보존되어 있다.

연혁

  • 1914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상화동, 하화동 일부와 용정동을 병합하여 용정동과 상화의 이름을 따서 용화리가 됨
  • 1986
    온양시 승격에 따라 용화동의 명칭이 계속 유지됨
  • 2003
    지방자치법 제4조 제5항에 의거 “아산시행정동.리의명칭.관할구역 및 동.리장 정수에 관한 조례”개정으로 온양5동으로 명칭변경
닫기

온양6동

시의 동남부에 위치하며, 옛 온양군의 소재지로 각종 문화재가 있고, 아파트 건립으로 인구가 증가추세에 있음

지명유래

전국 최고(最古)의 온천으로서의 역사를 자랑하는 온양온천(溫陽溫泉)은 백제, 통일신라시대를 거쳐 고려시대에는 온수현으로 지칭되었으며,1442년 세종대왕이 온양 행차시 온양군이라 개칭, 그 후 계속 온양(溫陽)으로 불리워져 왔다. 지명 자체가 이 곳이 온천지임을 말해주고 있으며, 조선시대 세종대왕이 15년(1433년) 정월에 안질 치료차 행차한 이후 현종, 숙종, 영조, 정조 등 여러 임금께서 온궁을 짓고 휴양이나 병의 치료차 머물고 돌아간 유적으로서, 정비와 영괴대(靈槐臺)의 비각과 비석은 현재 온양온천관광호텔 구내에 보존되어 있다.

연혁

  • 백제시대
    온정군
  • 통일 신라시대
    온정주
  • 고려시대
    온주현
  • 조선시대
    온양군
  • 1914
    아산군 온양면
  • 1941
    온양읍 승격
  • 1986
    온양시 온주동
  • 1995
    아산시 온주동
  • 2003
    온양6동으로 명칭변경
닫기
이 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대하여 어느 정도 만족하셨습니까?
내용 삭제
만족도 점수를 보내시겠습니까?
만족도 조사가 완료되었습니다